야래향 夜來香
눈이 나려 나를 덮으면 그 밤에는 오시려나
마른 가지 희스무레하게 꽃눈이 맺혀오면
저문 유월 임의 품에서 이향異香에 취했거늘
된 비 세차게 내리고 씻겨도 차마
떨치지 못하노라
아니 오실 임을 애써 기다려 무엇 하랴
밑가지 채 꺾어 버려도 향기가 먼저 마중 가는데
아니 오실 임을 자꾸 새겨서 무엇 할까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어떠리
달 비치던 푸른 강가엔 쐐기풀이 웃자라고
구름 뒤에 어슴푸레하게 숨은 내 임의 얼굴이
님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꺾고 채이고 밟히고 짓이겨져도
또 피우고 마노라
오라, 아득히 멀리 멎어버린 임의 향기여
부옇게 번지는 꽃무더기 헤치며 울어보노라
가라, 내게서 짙게 배어버린 임의 온기여
떠나시던 임의 옷깃에 엉겨 매달려 볼 것을
아니 오실 임을 애써 기다려 무엇 하랴
밑가지 채 꺾어 버려도 향기가 먼저 마중 가는데
아니 오실 임을 자꾸 새겨서 무엇 할까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어떠리
지난날의 약속들을 의심치 않고저
내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니
함께 부른 사랑 노래 잊지는 말고저
모두 잃고 하나 얻은 것이니
아니 오실 임을 애써 기다려 무엇 하랴
밑가지 채 꺾어 버려도 향기가 먼저 마중 가는데
아니 오실 임을 자꾸 새겨서 무엇 할까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어떠리
이 생에 살아서 못 만난 들
사랑했으매
< 환상소곡집 Op.1 >의 ‘아라리’를 시작으로 제시한 세계관은 마침내 ‘월령’과 ‘야래향’으로 이어지는 연작으로 빛을 발한다. 가야금과 현대 악기를 차분하게 조립한 동양적 작풍, 5분이 넘는 장대한 구성에도 뚜렷한 기승전결, 그리고 애수 어린 심규선의 보컬이 이에 단단하게 결속되며 온전한 하나의 서사를 완성한다. 무엇보다 탁월한 스토리텔링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주체적인 그림을 그려냈다는 점. 꾸준한 자기성찰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By 장준환
IZM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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