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영 - 여리고 미숙한 나의 인생

살아가는 일이 왜 이리도
익숙해지지 않는걸까
방금 지나온 길도 나는 잊어버리고말아
얼마나 더 살아야 모든 일에 익숙해질까
내 인생에서 가장 궁금한 일
바람이 불어오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비가 내리면 눈물이 흐른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언제까지나 그럴테지
여리고 미숙한 나의 인생
이 모든 낯선 일들이
어느 길목에서는 좋은 추억이 될까
이 모든 두려운 일도
어느 길목에서는 아무렇지 않을까
서툰 걸음으로 나는 또 길을 떠난다
내가 가야할 길이 끝나지 않았다
이 모든 낯선 일들이
어느 길목에서는 좋은 추억이 될까
이 모든 두려운 일도
어느 길목에서는 아무렇지 않을까
서툰 걸음으로 나는 또 길을 떠난다
내가 가야할 길이 끝나지 않았다
내가 가야할 길이 끝나지 않았다

INTRODUCTION

1989년에 영남대학교 민중가요 노래패 '예사가락'에서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한 김가영의 데뷔 앨범이다.(먼저 싱글 앨범 [선택]은 1999년에 나왔다.) 그래서 부제로 "1989-2002 김가영 1집"이라고 적혀 있다.
이 계열 뮤지션들 중의 일부가 90년대에 들어와서 기존의 대중음악계에 "기존의 대중음악 포맷"으로 진입한 것처럼, 김가영도 노래를 찾는 사람들 4집에 참여하였고, 록그룹 천지인의 보컬과 노래마을의 객원 보컬 생활을 거쳤다.
그렇다고 그 계열의 많은 뮤지션들이 솔로 앨범을 발표한 것은 아니다. 여자 뮤지션들만 얘기를 한다면 김가영 이전에는 노찾사 출신의 류금신이 [희망](1995/사운드랩)을, 푸른물결, 천지인 출신의 손현숙이 [아름다운 약속](1998/푸른섬)을, 노래마을 출신의 윤정희가 [표현](2000/문화강국)을 발표한 정도이다. 그래서 나 또한 80/90년대 민중음악진영에 관해서는 전체적인 흐름 정도만 알 정도로 무지하지만, 대체로 이 계열 뮤지션들의 역량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단지 그간의 발표된 음반으로만 민중음악 진영 출신 여자 뮤지션들을 평가한다면, 류금신의 어정쩡한 데뷔 음반을 거쳐서, 김현성이라는 "이 계열의 아티스트"와의 작업으로 소기의 음악적인 성과도 얻어냈던 손현숙의 데뷔 음반, 그리고 윤정희의 또 반복된 패착성 데뷔 음반으로 이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다.
류금신의 [희망]은 세션에 강호정(key), 신윤철(g), 손진태(g), 이태윤(b), 김민기(d), 황수권(key), 최태완(key)이 참여하고, 레코딩/믹싱에는 고종진, 강호정이 참여한 A급 스탭 진용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언발란스'였다. 노래가 세션/편곡에 맞지 않았던가, 그 반대였다. 이런 문제점은 10곡이 수록된 앨범을 듣다보면 9번째 곡까지 반복되다가, 마지막 곡인 <지금, 나 여기에서>에 와서야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물론 시간적으로 <지금, 나 여기에서>가 맨 마지막에 녹음된 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류금신은 그 곡 같은 감동적인 노래들을 부를 수도 있었다는 얘기지만, 철저하게 준비되지 않았던 음반 제작으로 낭패를 겪은 것으로 생각된다.(이 부분은 민중음악 진영에서조차도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류금신이 가수로써의 자질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고, 정확하게는 현재 대중음악을 듣는 매니아들의 감성을 너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이런 것을 보면 민중음악을 하는 많은 뮤지션들이 어차피 그 안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스스로 '민중'의 범위를 좁히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 나 같은 매니아들은 '민중'이 아닌가?
만약 대중가수로 자처하는 뮤지션이 현재의 음악씬(최소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씬)과 정서적으로 괴리감을 느낀다면, 그건 매니아들에게 질책할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로 귀결된다. '동시대성'을 가지고 한국의 거의 모든 "진지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환영받는 정태춘과 안치환을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 누가 음반을 발표하더라도 주목되는 것은 아티스트의 자질과 노래의 함량이다. 손현숙의 앨범이 빛났던 것은 김현성이 만든 <오월에서 푸른 시월까지>나 <아름다운 약속>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편곡이나 세션도 무리가 없었다.
이제 김가영의 본 앨범으로 와서 얘기를 한다면, <바램>과 같은 차라리 안 불러도 좋았을 노래도 있지만(왜 그것도 하필이면 맨 마지막에 배치했을까? 가사는 좋지만 전반적인 음악적 기조에서 '깨는' 어정쩡한 록 연주. 누가 만약 앨범에서 이 노래만 듣는다면 역시 "민중음악 출신 가수의 한계야!"라는 얘기를 듣기 딱 좋은 그 노래), <나무가 있는 언덕>, <날치>, <잊혀지는 건> 같은 노래들은 현재 한국의 여자 가수들 중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 김가영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이다.
한영애, 장필순, 이상은으로 대표되던 90년대 여자 뮤직씬은 현재 이들의 활동 부재와 에너지 상실로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영애는 [난다 난다 난·다](1999/신촌뮤직)이후로, 장필순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1997/킹레코드) 이후로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고, 이상은은 2001년 앨범 [Endless Lay]로 실망감을 안겨준 상태이다.(이상은이 앨범 발표 후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20대의 터널을 지나서~ " 라고 했던 얘기들은 결코 실망스러운 작품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인터뷰 자체는 근사했지만 이는 단지 '씨네21' 독자들을 위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나 같은 "실제적인 음반 구매자들"을 작품으로써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기타 다른 것들은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김가영이 "대안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듯 싶다. 앨범에서 그녀의 작품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영애가 얘기한 "가수가 싱어송라이터일 때는 노래를 부를 때 상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에 별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영애 같은 경우 자기가 노래를 만들지 않고서도 [바라본다](1988/서라벌레코드)와 같은 명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주장을 인정한다.
그리고 실제로 김가영의 1집에서 보면 류형선(<나무가 있는 언덕>, ), 유인혁(<날치>, <잊혀지는 건>)이라는 좋은 노래를 만드는 작사/작곡가들과 편곡자 고명원이 그녀의 주위에 계속 포진한다면 분명히 2집도 기대할 수준이 될 것이다.
정식 유통을 하지 않고 사이트를 통한 판매를 하기 때문에, 현재 시장에서 이 음반을 볼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고, 그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독자들의 성원이 있다면 그녀의 음반을 시장에서 정식으로 볼 날도 올 것이다.

(김가영 공식홈페이지)

http://www.maniadb.com/album/110950